시사경제
비닐봉투가 147만원? 발렌시아가, '못생김의 미학' 끝판왕 찍다

지난 25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발렌시아가는 이달 초 '마르쉐 패커블 토트백 미디엄(Marché Packable Tote Bag Medium)'의 사전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2025년 겨울 시즌 컬렉션의 일부로 공개된 이 제품은, 새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구김 효과를 적용하여 마치 사용하다 버려진 헌 비닐봉투처럼 보이도록 디자인되었다. 이러한 '디스트레스드(distressed)' 디자인은 발렌시아가가 최근 몇 년간 고수해온 미학적 특징 중 하나다.
하지만 발렌시아가는 이 가방이 일반적인 폴리에틸렌(PE) 소재의 비닐봉투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브랜드 측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섬유"로 불리는 다이니마(Dyneema)와 폴리아미드(polyamide)를 사용했다고 밝히며, 내구성과 기능성을 내세웠다. 또한, "내부에 평면 포켓이 있어 파우치 형태로 접어 보관할 수 있으며, 무게가 10kg에 달하는 노트북까지 수납 가능하다"고 설명하며, 단순한 비닐봉투가 아닌 실용적인 토트백임을 역설했다. 현재 이 토트백은 발렌시아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995달러(약 140만원)에, 국내 공식 온라인몰에서는 147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제품이 공개되자마자 소셜미디어(SNS)를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즉각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비닐봉지와 다를 바 없는 비닐봉지", "저 가격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명품 브랜드가 소비자들을 조롱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비판과 조롱이 봇물을 이뤘다. 일각에서는 "명품의 예술적 시도", "일상적인 오브제를 재해석한 것"이라는 옹호론도 나왔지만, 터무니없는 가격 앞에서는 설득력을 얻기 어려웠다. 명품 브랜드의 '일상의 재해석'이라는 예술적 시도와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는 현실적 비판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사실 발렌시아가의 이 같은 '황당한' 제품 출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의 지휘 아래 발렌시아가는 지난 몇 년간 고의적인 '못생김(ugly chic)'과 '논란 마케팅'으로 끊임없이 화제를 모아왔다.
지난해에는 일부러 구멍이 뚫리고 해진 디테일을 더한 '디스트로이드 타이츠(Destroyed Tights)'를 약 1490달러(약 210만원)에 판매해 대중을 놀라게 했다. 또한, 일반 투명 테이프 롤에 발렌시아가 로고만 새겨진 팔찌 '테이프 브레이슬릿(Tape bracelet)'을 4000달러(약 560만원)에 판매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DHL 로고 티셔츠, 이케아(IKEA) 쇼핑백을 연상시키는 가방, 크록스(Crocs)와의 협업을 통해 선보인 플랫폼 슈즈 등, 발렌시아가는 끊임없이 논란의 경계를 넘나드는 제품들을 선보여왔다.
이러한 발렌시아가의 잇따른 '논란 마케팅'은 브랜드의 인지도를 폭발적으로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동시에 명품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이들의 시도가 예술적 가치로 인정받는 '아방가르드 패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자 '조롱거리'로 전락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발렌시아가가 추구하는 '반(反)럭셔리' 미학이 전통적인 명품 소비층을 멀어지게 할지, 아니면 새로운 세대의 소비자를 끌어들여 명품 시장의 지형을 바꿀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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