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자 '트레킹 성지'로 불리는 이탈리아 돌로미티 산맥이 때아닌 '입장료 게이트' 논란에 휩싸였다. 

 

아름다운 풍광 뒤에 숨겨진 '오버 투어리즘(과잉 관광)'의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지역 농민들이 직접 등산로에 개찰구를 설치하고 입장료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쓰레기 문제와 사유지 침범에 대한 절규에 가까운 자구책이지만, 이탈리아 당국은 "허가 없는 불법 행위"라며 즉각적인 철거를 요구하고 나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에 따르면, 돌로미티 지역 농장주 4명은 과잉 관광으로 인한 피해가 극심해지자 세체다(해발 2519m) 정상으로 향하는 일부 등산로에 개찰구를 설치했다. 이 구간, 특히 정상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300m를 이용하려면 1인당 5유로(약 8100원)를 지불해야 한다. 요금을 내지 않는 관광객은 사유지를 우회하는 더 긴 등산로를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땅이 무분별한 관광객들로 인해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농작물과 가축이 위협받는 상황에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당국은 이러한 조치에 대해 강경한 입장이다. 이탈리아 법률상 자연공원의 자유로운 출입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농민들이 설치한 개찰구는 명백한 불법이라는 것이다. 현지 지역 관광청은 농민들에게 개찰구 철거를 요청하는 한편, 산림 감시원들을 배치하여 관광객들이 지정된 등산로를 벗어나 사유지를 침범하지 않도록 계도하고 있다. 관광객 유치로 인한 경제적 이득과 지역 주민의 삶의 질 보장, 그리고 법적 원칙 사이에서 당국 역시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다.

 

돌로미티는 독특한 암석 지형과 그림 같은 고산 초원이 어우러져 전 세계 트레커들의 버킷리스트에 오를 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그러나 최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인생샷 명소'로 입소문이 나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이로 인해 쓰레기 무단 투기, 사유지 무단 침범, 심지어는 준비되지 않은 관광객들의 안전사고 위험까지 급증하고 있다.

 

세체다 초지 소유주이자 전 이탈리아 국가대표 스노보드 선수인 조지 라반저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매일 너무 많은 사람이 우리 땅을 지나며 쓰레기를 남긴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지방 당국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계획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혀, 당국의 무관심이 이번 사태를 초래했음을 시사했다. 지역 산악 클럽 회장 알베르토 자넬라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나라면 요금을 5유로에서 100유로로 인상하고 여행 인플루언서의 계정을 폐쇄할 것"이라며 과잉 관광 문제에 대한 극심한 피로감과 분노를 표출했다.

 

돌로미티의 이번 '입장료 게이트' 사태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과잉 관광 문제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하고 지역 주민들의 삶을 보호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관광을 유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