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이란 "보모 행세 말라"… 女축구팀 망명에 호주와 '정면 충돌'
자유를 향한 마지막 비상구 앞에서 운명은 잔인하게 엇갈렸다. 호주 정부가 자국 내 망명을 요청한 이란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에게 ‘인도주의 비자’라는 생명줄을 던졌지만, 단 한 명의 선수는 끝내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뒤늦게 확인된 어머니의 음성 메시지는 “돌아오지 마라, 그들이 널 죽일 것이다”라는 절규였지만, 선수는 이미 이란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뒤였다.11일(현지시간) 호주 내무부와 외신에 따르면, 호주 정부는 이란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 5명과 스태프 1명 등 총 6명에게 인도주의 비자를 최종 발급했다. 이는 영주권 신청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치로, 사실상 호주 정부가 이들의 신변 보호를 공식화한 것이다. 토니 버크 호주 내무부 장관은 “우리는 대표팀 전원에게 망명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했다”며 “이 비자는 그들이 호주에서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원 망명’이라는 극적인 결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초 망명 의사를 밝혔던 선수 중 한 명이 막판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선수는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국에 있는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며 귀국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매체 더선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해당 선수의 어머니가 딸의 귀국을 막기 위해 “절대 돌아오지 마라”는 다급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으나, 통신 사정 등으로 인해 메시지가 너무 늦게 전달된 것이다. 결국 이 선수는 어머니의 경고를 듣지 못한 채 주호주 이란대사관 측과 접촉했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해 테헤란으로 돌아가는 절차를 밟게 됐다.

이 선수의 귀국 과정은 남은 동료들에게도 위협이 됐다. 그가 귀국 의사를 밝히며 이란 대사관 측에 연락을 취하는 과정에서, 망명을 신청한 동료들이 은신해 있던 장소의 정보가 노출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호주 당국은 즉각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긴급 이동 작전을 수행해 남은 6명을 다른 안전 가옥(Safe House)으로 피신시켰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 2일 호주에서 열린 한국과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경기였다. 경기 시작 전 이란 선수들은 국가 제창을 거부하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는 이란 내 반정부 시위에 연대한다는 무언의 저항이었다. 이 모습이 중계되자 이란 국영방송은 즉각 이들을 ‘반역자’로 규정하며 비난을 쏟아냈고, 귀국 시 처벌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선수들은 호텔을 탈출해 호주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호주 정부가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고 보호 조치에 들어가자 이란 당국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선수 이탈을 넘어 국가 체제에 대한 도전이자 서방 국가의 개입으로 간주하는 모양새다.

이란축구협회 메흐디 타지 회장은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호주 경찰이 개입해 우리 선수들을 호텔에서 데려갔다”며 “이는 명백한 납치이며 우리 소녀들은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 검찰총장실 역시 성명을 내고 “선수들이 적들의 선동에 휘둘려 감정적인 판단을 했다”며 즉각적인 귀국을 종용했다. 모하마드 레자 아레프 수석부통령까지 나서 “호주는 이란 국민의 가족사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며 “어머니보다 더 친절한 보모 행세를 하지 말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가했다.
하지만 호주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버크 장관은 “호주라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든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자유가 있으며, 우리는 그 선택을 존중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현재 호주에 남은 6명의 선수와 스태프는 호주 당국의 삼엄한 보호 아래 안정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본국으로 돌아간 선수와 그 가족, 그리고 호주에 남은 이들의 가족들이 이란 당국으로부터 어떤 처우를 받게 될지는 미지수다. 스포츠 정신과 인권, 그리고 국가 간의 외교적 자존심이 충돌한 이번 사태는 국제 사회에 ‘자유의 값’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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