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작품 세계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진 여성들이 있었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서 오웰은 자신의 소지품을 훔쳐간 범인을 '어느 까무잡잡한 이탈리아인'이라고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그가 좋아했던 '꼬마 창녀' 수잔이었다. 오웰이 이런 거짓말을 한 이유는 여성에게 자신을 속일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면 자신의 권위가 약화되고 수치스러운 존재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웰의 작품과 삶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지워진 여성은 그의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였다. 아일린은 자신의 삶을 바쳐 '조지 오웰'이라는 세계를 창조하는 데 기여했지만, 오웰의 작품 속에서는 단지 서른일곱 번의 '내 아내'라는 언급으로만 존재했다.

 

애나 펀더는 저서 '조지 오웰 뒤에서'에서 이러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녀는 2017년 오웰이 생의 마지막 시기에 쓴 여성 혐오적 글을 발견하고, 이것이 아일린을 겨냥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펀더는 오웰의 전기들을 읽기 시작했고, 점차 오웰에서 아일린으로 시선을 옮겨갔다. 그녀는 오웰과 아일린 주변인들의 기록을 발굴하고, 두 사람의 양아들과 인터뷰하며 스페인 현지 조사까지 진행했다.

 

펀더의 조사 결과, 아일린은 오웰과는 상당히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다. "세상이 어떻게 반격하는지 보고 싶어 하"며 "대화체로 된 수류탄"을 던지는 괴팍한 오웰과 달리, 아일린은 "경청하는 데 있어 비상한 능력"을 가졌고 "자신이 사람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마치 '책 속의 인물들을 논하듯이' 할 수 있는 소설가의 본능"을 지닌 사람이었다.

 

놀랍게도 아일린은 오웰의 대표작 '1984'보다 먼저 '세기말, 1984'라는 디스토피아 시를 썼다. 또한 스탈린을 비판하는 에세이를 쓰려던 오웰에게 "동물이 나오는 우화로 써보라"고 제안했고, 이것이 '동물농장'의 탄생 배경이 되었다. 아일린의 창의적 영향력이 오웰의 대표작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도 아일린은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그녀는 영국 독립노동당 스페인 지부에서 병참 업무와 선전 활동을 담당했고, 오웰과 동료들의 목숨을 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오웰이 쓴 '카탈루냐 찬가'에서 아일린은 단지 "차와 초콜릿"을 보내주는 보조적 존재로만 잠시 언급될 뿐이었다.

 

펀더는 "가부장제는 한 편의 허구다. 모든 주요 인물은 남성이고, 세계는 남성들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여성들은 그들을 보조하는 배역(cast), 아니 계급(caste)이다"라고 지적하며, 역사 속에서 지워진 아일린의 삶과 공헌을 632쪽 분량의 책을 통해 오롯이 복원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