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
빈 파주출판도시, 닷새간 예술 놀이터로 바뀐다
파주출판도시가 가을 초입, 예술을 매개로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평소 비어 있던 건물의 호실과 거리, 잔디마당, 벽면이 전시장과 공연장, 체험 공간으로 바뀌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 무대처럼 운영된다.갤러리끼는 오는 10월 7일부터 11일까지 경기 파주시 아트팩토리 엔제이에프와 파주출판도시 일대에서 도시재생 예술축제 ‘아트파먼트위크 2026’을 개최한다. 지난해 처음 선보인 뒤 올해 두 번째로 열리는 행사다.
이번 축제는 배우이자 문화기획자인 이광기 갤러리끼 대표가 총괄 기획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후원하며, 올해는 관람 문턱을 낮추기 위해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아트파먼트위크는 이름처럼 ‘아트’와 ‘아파트먼트’를 결합한 성격의 행사다. 비어 있는 공간에 갤러리와 작가가 입주하듯 들어오고, 관람객은 여러 집을 방문하듯 작품을 만난다. 정형화된 전시장보다 생활공간에 가까운 구조를 활용해 예술과 일상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다.
올해 축제의 방향은 ‘예술과 함께 사는 삶’으로 압축된다.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가 특별한 날의 이벤트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를 걷고 사람을 만나고 공간을 둘러보는 일상적인 경험 안으로 들어오도록 구성했다.
행사의 주요 무대인 아트팩토리 엔제이에프 1층 유휴 호실은 축제 기간 각각의 갤러리 공간으로 변한다. 새로 만든 부스 안에 작품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아트페어와 달리, 기존 건물의 방과 복도, 창문, 벽면을 그대로 살려 전시를 꾸민다.
참여 갤러리들은 각자 맡은 호실을 독립적인 전시 공간처럼 구성한다. 관람객은 정해진 동선을 따라 이동하기보다 복도를 걷다가 마음에 드는 방으로 들어가 작품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축제를 즐긴다.
이 같은 구성은 파주출판도시의 유휴공간을 단순히 빈 공간으로 두지 않고, 도시재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무대로 삼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용되지 않던 공간은 예술을 통해 다시 사람을 끌어들이는 장소가 된다.
전시는 건물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잔디마당과 복도, 외벽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B동 동측 잔디마당에는 주단 작가의 ‘변신이발소’가 설치된다. 일상에서 익숙한 이발소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바꿔 놓은 설치·퍼포먼스형 작품이다.
A동과 B동 사이를 잇는 복도에는 이재형 작가의 조형물이 놓인다. 관람객이 작품을 보기 위해 별도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길 위에서 자연스럽게 작품과 마주치는 구조다.
이번 축제에는 국내외 34개 갤러리와 작가가 함께한다. 회화와 조각, 도자, 판화, 에디션, 아트 굿즈 등 여러 장르가 한 공간에 모인다. 전문 컬렉터뿐 아니라 미술을 가볍게 접하고 싶은 관람객도 다양한 작품을 비교하며 볼 수 있다.
아트팩토리 엔제이에프 A동에는 고미술인, 갤러리 아본 도곡, 스마트갤러리, 비유엠 갤러리, 두손갤러리, 더써드, 예술공간의식주, 갤러리 이마주, 빠르크 에디션, 온 아트스페이스, SDR 프로젝트, 하이파이브모먼츠, 한젬마와 천재 아티스트 등이 참여한다.
일본 고베에서 활동하는 Kobe Motomachi Buburindo Gallery도 A동에 자리해 국제적인 색채를 더한다. 국내 갤러리 중심의 행사에 해외 갤러리가 참여하면서 파주출판도시의 예술축제가 지역 행사를 넘어 교류형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B동에는 갤러리신라, 유앤씨갤러리, 아트스페이스휴, 에브리아트, 에이뷔오, APY 갤러리, 갤러리몸, 뮤지엄샵, 아트앤에디션, 프로젝트 레스토피아, 다름, Hee Ceramic studio, Artist Crew: DoCi, 갤러리끼 등이 참여한다.
한국 실험미술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 김구림 작가의 작품도 축제장에서 만날 수 있다. OMG갤러리는 두 개의 호실을 하나로 연결한 공간을 마련해 김구림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독립된 방 구조를 활용한 전시 방식이 작가의 실험적 작업과 어우러질 것으로 보인다.
축제는 작품 판매와 감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파주출판도시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실제 작업실을 찾아가는 오픈스튜디오 투어도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은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매일 운영된다.
관람객은 전용 셔틀을 타고 작가들의 작업실과 아트센터를 방문한다. 작품이 걸린 전시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재료, 도구, 작업 과정의 흔적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완성된 결과물보다 창작이 이루어지는 환경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다.
투어에는 전문가 해설이 더해진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미술평론가 안현정 박사가 동행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미술기자 조상인이 함께하며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오전 A코스는 김기라, 황란, 최영욱 작가의 작업실과 하종현 아트센터를 방문하는 일정이다. 오후 B코스는 하종현 아트센터를 시작으로 김윤신, 이세현, 정현, 지석철 작가의 작업실을 찾는다.
오픈스튜디오 투어는 회차당 15명만 참여할 수 있는 소규모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작가의 공간을 조용히 둘러보고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정원을 제한했으며, 사전예약은 조기 마감됐다.
미술을 다양한 주제와 연결하는 강연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아트팩토리 엔제이에프 1층 A동 A119에서 특별강연이 이어진다.
9일에는 이준엽 갤러리신라 대표가 갤러리 운영과 미술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연 주제는 ‘우리는 왜 갤러리를 하는가’다. 같은 날 오유경 아나운서는 ‘명곡이 된 명화’를 주제로 미술과 음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지점을 소개한다.
10일에는 방송인이자 아트디렉터인 한젬마가 그림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강연 제목은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운다’다. 역사 커뮤니케이터 최태성은 ‘역사 속 예술-시대를 담은 그림들’을 주제로 예술작품 속에 담긴 시대의 장면을 풀어낸다.
11일에는 경제 크리에이터 주언규가 ‘콘텐츠는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를 주제로 강연한다. 예술과 창작물을 산업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간으로, 콘텐츠 비즈니스에 관심 있는 관람객에게도 유용한 자리가 될 전망이다.

특별강연은 모두 무료다. 다만 좌석이 한정돼 있어 강연별로 네이버 예약을 통해 사전등록해야 한다. 일반 전시 관람 등록과 강연 신청은 별도로 진행된다.
갤러리끼에서는 축제와 연계해 이상용 작가 개인전도 열린다. 관람객은 아트팩토리 엔제이에프에서 아트페어를 본 뒤 갤러리끼로 이동해 개인전을 이어서 감상할 수 있다. 파주출판도시 안의 여러 공간을 연결해 하나의 관람 코스를 만드는 방식이다.
음악을 더한 감상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갤러리끼 부스에서는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로이코와 함께 특별 청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작품을 보는 공간에서 음악을 함께 들으며 감상의 감각을 넓히는 시도다.
이 프로그램은 오유경 아나운서의 ‘명곡이 된 명화’ 강연과도 연결된다. 강연에서 다룬 음악을 고음질 오디오로 감상할 수 있어, 그림과 음악의 관계를 보다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갤러리끼 앞 대형 벽면에서는 라이브 그래피티 월 페인팅이 펼쳐진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위제트, 윤삼, 시치, 살보가 참여해 아무것도 없던 벽면을 현장에서 작품으로 바꾼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완성된 그림보다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관람객은 밑그림이 생기고 색이 입혀지고 이미지가 완성되는 흐름을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다. 작업 과정 자체가 하나의 공연처럼 구성된다.
참여 작가들은 K팝 관련 프로젝트에서도 활동했다. 방탄소년단 정국의 첫 솔로 앨범 ‘GOLDEN’, 블랙핑크 ‘Kill This Love’, 에스파 ‘Black Mamba’, 빅뱅 ‘맨정신’, NCT DREAM ‘Broken Melodies’ 등 여러 뮤직비디오와 프로젝트의 그래피티 작업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K팝 영상 속에서 보던 스트리트 아트가 파주출판도시의 실제 벽면 위에서 구현된다는 점도 이번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관람객은 도시 공간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 변화하는 순간을 직접 볼 수 있다.
관람객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브랜드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복순도가, 낮을지새우는사람들, 에이브, 나투리아, 닿기를, 오디크, 로이코, 모엣헤네시&노츠, 리씽크 등이 참여해 체험과 기념품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예술과 위스키를 결합한 칵테일 부스도 준비된다. 서울 용산에서 바를 운영하는 브랜드 노츠와 싱글몰트 위스키 브랜드 글렌모렌지가 협업한다.
글렌모렌지는 국내 바텐더들과 ‘글렌모렌지 파이오니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박상엽 브랜드 노츠 오너 바텐더가 함께한다.
브랜드 노츠는 미술을 주제로 해석한 글렌모렌지 기반 칵테일 두 종류를 선보인다. 작품을 눈으로만 감상하는 데서 나아가 맛과 향으로도 예술적 경험을 확장하는 구성이다.
올해 아트파먼트위크는 모든 관람객에게 무료로 열린다. 전시와 주요 부대 프로그램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입장료를 없앴다. 주최 측은 이를 통해 예술축제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도 편하게 방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운영 시간은 매일 오후 3시부터 밤 9시까지다. 낮에 집중되는 일반 아트페어와 달리 저녁 시간까지 문을 여는 나이트 아트페어 형식이다. 퇴근 이후나 주말 저녁에 방문하는 관람객도 여유롭게 전시를 둘러볼 수 있다.
반려동물 동반 관람도 가능하다. 가족, 친구,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듯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개방한다. 행사장 인근에는 푸드트럭도 운영돼 전시 관람과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일반 전시는 현장에서 바로 관람할 수 있다. 사전등록을 하면 행사 안내와 일정 변경 사항 등을 받아볼 수 있다. 특별강연은 네이버 예약을 통해 강연별로 별도 신청해야 한다.
이광기 갤러리끼 대표는 이번 행사를 두고 예술이 삶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첫 행사에서 가능성을 확인했고, 올해는 입장료를 없애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만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어 버려졌거나 비어 있던 공간에 예술이 들어설 때 도시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관계도 함께 회복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최 측은 아트파먼트위크를 일회성 행사로 끝내지 않을 계획이다. 매년 정기적으로 축제를 이어가며 파주출판도시의 예술가, 기관,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지역 문화 브랜드로 키워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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